딥블루의 예술블로그

여러 작품과 예술가들을 소개하며 예술적 고찰을 통해 삶을 논해봅니다.

  • 2025. 3. 19.

    by. deepbluetime

    목차

      리처드 세라: 무게를 세우다, 공간을 걷다

      Richard Serra, 1938-2024
      Richard Serra, 1938-2024

      강철의 벽 앞에 서면 무엇이 느껴지는가?

      리처드 세라(Richard Serra, 1938-2024)는 강철을 세우고, 공간을 뒤집고, 인간의 감각을 흔드는 현대 조각의 선구자다. 그의 작품을 경험하는 일은 단순히 바라보는 것이 아니다. 관객은 직접 그 공간 속으로 걸어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는 강철의 무게를 어깨에 얹은 것처럼 느끼고, 가파른 곡선을 따라 걸으며 균형 감각을 잃는다. 리처드 세라의 작품은 육중하고 단순하지만, 그 단순함이야말로 우리의 경험과 감각을 철저히 시험하는 도구다.

      그는 조각을 더 이상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세라는 공간과 시간, 그리고 신체의 관계를 조각의 핵심으로 삼았다. 강철은 그의 손에서 더 이상 무기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공간을 자르고, 시간을 휘게 하고, 우리 몸을 밀어내고 당기는 거대한 힘이 된다.

      그는 왜 강철을 선택했는가?

      세라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났다. 조선소에서 일했던 아버지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산업 현장의 재료와 기술을 가까이에서 체험했다. 그는 어렸을 때 선박이 물 위에 떠오르는 순간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무거운 철 덩어리가 물 위에 ‘뜬다’는 사실은 세라에게 평생에 걸쳐 철이라는 물질에 대한 근본적인 관심과 미학적 영감을 제공했다.

      철, 특히 산업용 강철은 그의 작품에서 재료 그 자체로 존재한다. 세라는 철이 지닌 물성과 무게, 질감을 숨기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을 극대화했다. 용접이나 세밀한 조각을 통해 형태를 만드는 대신, 거대한 강철 판을 자르고 세워 공간 자체를 구성한다. 그 과정에서 그의 조각은 조각을 넘어 건축과 공간 디자인, 심지어 퍼포먼스의 경지로 확장된다.

      강철 벽 사이를 걷다: 리처드 세라의 대표작들

      《Tilted Arc》(1981)

      가장 논쟁적인 작품이다. 뉴욕 맨해튼 연방법원 앞 광장에 설치된 이 작품은 36.5미터 길이의 강철판으로, 살짝 기울어진 형태로 광장을 가로질렀다. 시민들은 통행이 불편하다고 불평했고, 결국 1989년 철거되었다.

      그러나 세라의 의도는 명확했다. 그는 이 작품이 단순한 조각이 아닌, 공간을 새롭게 인식하게 만드는 경험이 되기를 원했다. 《Tilted Arc》는 사라졌지만, 공공미술과 시민권이라는 논쟁의 중심에 서며 역사에 남았다.

      《Torqued Ellipses》(1996~)

      거대한 강철판을 나선형과 타원형으로 비틀어 만든 시리즈다. 관람객은 이 안으로 들어가 걷게 된다. 그 안에서 위와 아래, 안과 밖의 경계가 무너진다. 벽은 안쪽으로 기울어져 있거나 바깥으로 퍼져 있으며, 길을 따라 걷는 동안 균형 감각을 상실하게 만든다.

      강철의 차가움과 무게가 유기적이고 유동적인 형태로 변화하는 순간, 우리는 철판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미로 안에서 시간과 공간이 왜곡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Band》(2006)

      로스앤젤레스 현대미술관(MOCA)에 설치된 이 작품은 20톤이 넘는 강철판을 리본처럼 꼬아 만든 대형 설치작품이다. 5cm 두께의 강철판이 벽과 천장, 바닥을 가로지르며 끊임없이 구불구불 이어진다.

      멀리서 보면 선의 움직임 같지만, 가까이 다가서면 철판이 주는 강렬한 존재감과 공간을 장악하는 힘을 느낄 수 있다. 걷는 사람의 시점에 따라 형태와 공간이 변하며, 세라는 관객의 움직임에 따라 조각이 변화하는 순간을 만들어냈다.

       

      Toronto - Pearson International Airport: Richard Serra's Titled Spheres
      Toronto - Pearson International Airport: Richard Serra's Titled Spheres

      그는 왜 ‘공간을 만드는 조각’을 했는가?

      세라에게 조각이란 ‘대상’이 아니라 ‘공간’ 그 자체다. 그는 형태를 바라보는 예술이 아닌, 공간 안에서 신체가 움직이며 경험하는 예술을 추구했다. 그의 작품은 결코 정적인 오브제가 아니다. 우리가 그 안을 걷고, 감각하고, 긴장하는 모든 순간이 바로 그의 작품을 완성시킨다.

      “조각은 경험의 공간이다”라는 그의 말처럼, 작품의 크기나 무게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체험하느냐다.

      File:Richard Serra View Point
      File:Richard Serra View Point

      딥블루의 예술적 시선

      리처드 세라의 작업은 단순히 시각적인 감상이 아닌, 신체 전체로 경험하는 예술이었다. 그의 강철판 사이를 걷는 순간, 우리는 스스로의 무게와 균형, 그리고 존재를 인식하게 된다. 그의 작업은 공간을 통해 감각을 재구성하고, 조각이라는 개념을 철저히 다시 쓰게 했다. 세라는 결국, 무게와 시간 그리고 인간의 존재를 철판 위에 세운 조각가였다.